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라노 토모모리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타이라노 키요모리]]의 4남. 어릴 적부터 아버지 키요모리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,[* 키요모리의 장남이자 이복 형인 시게모리는 키요모리와 [[고시라카와 덴노|고시라카와 텐노]] 사이에 끼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고, 그나마도 요절했다. 무네모리는 시게모리 사후 '토료(棟梁, 동량)'로서 헤이케 일문을 이끌었지만 아버지만큼의 역량을 갖지 못해 결국 헤이케 일문을 멸망으로 내몬 용렬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.] 겐페이 전쟁기에는 헤이케의 동량 자리를 이은 용렬한 형 무네모리를 대신해 동생 시게히라(重衡)[* 토다이지(東大寺, 동대사)와 코후쿠지(興福寺, 흥복사)를 불사른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로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고 나라로 호송되어 자신이 불태웠던 코후쿠지 [[승병]]들에게 넘겨져 처형당했다. 이렇게 보면 우락부락한 헤이케 악당 1 같지만 모란 꽃에 비유되는 수려한 용모와 교양으로 유명했으며 나름의 불심도 갖췄던 인물로, 전투 중 뜻하지 않게 고찰들을 마구 불태우게 된 것에 일찍부터 PTSD에 시달린다. 헤이케 멸망기에 [[미나모토노 요리토모]] 앞에 끝려와서도 다 업보라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깨끗한 모습을 보이는데, 요리토모도 이를 인상적으로 여기지만 요리토모 개인의 원수가 아니고 조정과 종교계의 원수라 그 개인이 처우를 결정할 수 없었고, 결국 승병들에게 넘겨진다.]와 함께 사실상 헤이케를 이끌다시피 했다. 성격도 시원시원했는지 1160년에 무사시노쿠니(武蔵國)의 카미로 임명되었는데, 당시 이곳이 헤이케의 지행국(知行國)이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[[카와치 겐지]]의 세력권에 있었던 곳으로 헤이케에 대한 감정이 결코 좋지는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, 무사시노카미로 8년을 재임하고 다시 1180년에 무사시의 지행국주(知行國主)를 맡으면서 무사시노쿠니 안에 많은 헤이케 세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. 비유하자면 '''여당 지도부 요인이 야당 텃밭 지역에서 지지층을 얻은 셈이다.''' 단노우라 해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의 어머니 니이노아마에게 "우리 일문은 여기까지입니다.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되겠습니다."라고 하고는 다시 자신의 아내 및 일문의 여성들에게 "쓸데없는 것일랑 다 갖다 치워 버리십시오. 여러분은 이제 그 진기한 아즈마(東) 사나이를 보시게 될 테니!" 라며 배 곳곳을 돌며 청소를 했다. 그리고 갑옷 두 개를 겹쳐 입고 "보아야 할 것은 모두 보았다(見るべき程の事をば見つ)"는 말을 남긴 뒤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. 이렇게 보면 인생사 한 점 티끌 없는 무결점의 용장 같지만, 이치노타니 전투 패전 후 튀다가 겐지 적병을 다수 만나는데, 이때 15살 난 아들 토모아키라가 아빠 살리겠다고 적장을 끌어안고 뒹굴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냉큼 튀어버린 전적이 있다(...). 나중에서야 세상 다시 없는 못난 아비라며 부끄럽다고 징징 짜면서 --무능하지만 아들 버린 적은 없는-- 형 [[타이라노 무네모리|무네모리]]한테 위로받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